평등과 공정의 출발점에 서서
<창간사>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 때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국민들에게 던졌던 질문이다. 이후 한국 사회는 6명의 대통령을 선출했고, 여섯 번의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2025년 6월, 창간사를 쓰는 이 순간까지도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쉬이 답하지 못한다. 행복은커녕 폐부를 찌르는 고통 속에서 왜 우리가 그렇게 민주주의를 원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추가하며 우리를 둘러싼 취약한 제도와 황폐한 정치를 직시하고 있다. 오늘날의 삶은 치열하고, 고단하고, 불안하다. 소득 격차, 부담되는 주거비, 취업 전선과 불안정한 일자리, 장사 불경기, 은행 빚, 아이와 부모 돌봄, 자녀 교육, 질병과 고령화, 노후 생활, 예기치 않게 일어나는 대형 참사와 빈번한 자연재해까지 우리를 둘러싼 삶의 전 과정과 환경이 국민들의 삶을 불행의 도가니로 내몰고 있다.
'공동 우물'은 어디에 있는가
이문재 시인
우물에 대한 기억은 내게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는 우물가에서 발을 씻고 고무신을 탈탈 털었다. 볕 좋은 날이면 동네 아낙들이 수다를 떨며 빨래 방망이를 내리쳤고 김장철에는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장마가 지나면 연례행사처럼 우물을 청소해야 했다.
사춘기 때는 우물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누군가의 이름을 소리쳐 부르기도 했다. 아, 우물을 빼놓고 어찌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랴.
계엄이 있던 겨울
도종환 시인
증오가 이렇게 깊다는 것이라는 말이 들렸다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적대하고
확신하는 세상이 된 지 오래지만
배에 태워 백령도쯤 가서 폭사시킨다거나
건물 안에 모아놓고
폭파해서 없앨 계획을 세울 정도로
내가
우리가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는 게
가슴 아팠다
갈수록 말이 많아지고 목소리 톤이 높아지자
화제를 바꾸어 음악 이야기를 하자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이야기로 돌아오곤 했다
노회찬재단, <6411 지표>를 만들자!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노회찬재단의 <6411 지표>(가칭)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미 완성된 지표를 갖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열린 토론을 통해 노회찬재단을 상징하는 지표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지금 근로계약, 근로조건, 복지혜택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공정과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을 온전히 나타내는 지표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역량을 모아내는 일에 주목했으면 한다.
공화국의 ‘위기’에서
‘도약’하는 민주적 체제로
김만권 정치철학자
다행히,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며 우리 민주체제에 복원력을 증명했지만, 한편에서 공화국의 위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우선, 파면으로 인해 새로이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에서 계엄을 부정하지 않고 탄핵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종교적 극우세력과 연결된 인물이 여당의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게다가 대법원장을 포함해 파면된 윤석열이 임명한 10명의 대법관이 기존의 대법원이 해오던 원칙, 관행, 판례에서 벗어난 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을 통해 대선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계엄 이후 전면에 정치의 극우화와 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정치·사법 체제는 우리가 만든 87년 체제가 시대적 변화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화국의 위기가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있다. 단적으로 트럼프의 미국이 그렇다. 유럽에서도 극우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경로조차 유사하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드는 경로로 빠져들고 있을까? 여기에 대응하려면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만약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야 할 새로운 공화국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노회찬상>을 받은 사람들,
<노회찬상>을 선정한 사람들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인・발행인
노회찬상 수상자 선정은 교황을 뽑을 때와 마찬가지로 만장일치제다. 수십 건의 추천이 들어오는데 10명이 넘는 심사위원들이 진실성, 공익성, 선도성, 지속성 등 심사기준을 바탕으로 수상자를 선정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수상자가 누구인지 물었다.
내 인생의 소설 - 저기 저, 사람들
정지아 소설가
요즘 나의 소설은 치매에 걸려 점점 사나워지는 사촌언니, 없는 살림도 아닌데 먹을 것만 보면 눈이 뒤집혀 상한 것까지 먹어치우는 동네 아짐, 예쁘지도 않은 닭을 집안에 풀어 닭똥 속에서 함께 뒹구는 아랫집 처자다.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소설의 한 페이지를 넘기듯 마음이 두근거린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